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프 샤이데만 (문단 편집) === 독일 제국 시기 === 이 시기 샤이데만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 좌파에 가까웠다. 일례로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사민당이 독일 제국의 전쟁 수행을 위한 채권 발행에 동의할 지 말 것인지를 놓고 격렬하게 내분[* 전쟁 수행에 찬성한 대표적인 세력은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같은 당내 우파였으며, 반대한 세력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당내 좌파였다.]을 빚고 있던 상황에서 양 측간의 중재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샤이데만이 이때 내놓은 중재안이 ''''채권 발행에는 찬성하되, 종전 후 영토 확장 / 배상금 지불 등에는 단호히 반대하자''''였다. 그게 반대한다고 되는 일인지야.. ][* 당연히 이 애매한 중재안은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채 욕만 먹었고(...) 사민당은 분열된다. 이 분열 당시의 앙금으로 후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민당 정부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옛 동지들이 극우 [[자유군단]]에게 린치를 당해 살해되는 것을 방조~~라 쓰고 동의라고 읽는다.~~했고, 덕분에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내내 공산당과 사민당의 관계는 험악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좌파의 분열 덕에 가장 이득을 본 게 [[나치]](...)] 이러한 중재가 무위로 돌아가고 사민당이 분당된 상황에서 샤이데만은 당 내 우파로 전쟁 수행을 지지한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를 선택했고, [[1918년]]에 [[킬 군항의 반란]] 이후 [[독일 제국]]이 붕괴돼가는 상황에서 설립된 에베르트 내각[* 독일의 휴전 제안에 대해 당시 [[우드로 윌슨]]을 비롯한 연합군 지도자들이 '민주정부 아니면 독일이랑 대화는 없다'라고 강하게 버티니 독일 군부나 귀족들이 사민당에게 거의 강제로 똥 치우라고 만들어준 독일 제국 최후의 내각이다.]에 입각한다.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도망갔지만 아직 황태자 [[빌헬름 폰 프로이센]]을 '''빌헬름 3세'''로 세울지 혹은 다른사람[* 대표적으로 독일 제국 구성국들 중 프로이센 다음으로 제일가던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3세가 가장 유력했다. ]을 황제로 세울지, 공화정을 선포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을 때, 그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쓰레기같은 군주제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선포됐다, 에베르트가 수상이 되었다"며 멋대로 공화국을 선포한다. 에베르트는 공화국을 선포할지 안할지는 그가 단독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며 거세게 질책하지만[* 그는 직전 총리인 [[막시밀리안 폰 바덴]]을 [[섭정]]으로 지명하는 방법을 원했다.]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고, 그대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한다.[* 공화국의 이러한 탄생 사유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은 공화국임에도 두 대통령 모두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나치 집권 이전까지만 해도 독일 군주제 복권 여론은 높았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